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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산책자 미래연극: [극장전] 다시쓰기

웹진 연극in 창간 10주년

김연재

제220호

2022.06.16

세 번째 편지

진세 작가님께.

나는 어느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국수와 막걸리, 찐빵을 파는 관광지의 식당 거리를 빠져나오자 한적한 역사와 통유리로 둘러싸인 작은 여행안내부스가 보였습니다. 오후의 볕이 안내부스를 사선으로 가르고 야구모자를 쓴 안내원이 턱을 괸 채 졸고 있었습니다.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는 습한 터널을 지났습니다. 넓은 풀밭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는 몇 채의 인가와 축사, 그리고 커다란 창고가 있었습니다. 비탈의 맨 위에 서서 창고를 향해 걸었습니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그곳이 어릴 때 가본 극장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왜냐하면 누군가 나타나 짓궂게 웃으며 말을 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누구도 특정하지 않는 하얀 동상, 돌로 만든 연못이 있었고 연못 속에는 주황빛 잉어들이 헤엄쳤으며 간이 의자가 띄엄띄엄, 의외의 규칙성을 가지고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간이 의자에 앉았습니다. 창고 벽이 천장과 만나는 곳에 좁은 창문이 하나 나 있었고 창문에는 검은 종이가 발려 있었습니다. 종이는 습기와 햇빛을 견디며 오그라들어 바깥의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이윽고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익숙한 구두 밑창 소리. 배우들은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했고 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태생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떤 단어가 반복적으로 들렸는데 같은 발음의 단어가 나의 모국어에도 있었으므로 나는 나의 모국어에서 그 단어가 쓰이는 맥락과 의미를 잊으려 노력하며 오직 단어의 소리와 소리 낼 때 좁아지는 성대의 감각을 기억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며칠간 지속될 여행 동안 그 단어를 이름 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곳에는 나를 호명할 사람도 아는 사람도 우연히 마주칠 사람도 없지만 그런 이름으로 불리자고 시장을 걸을 때 그 단어를 들으면 이유 없이 뒤를 돌아보자고 생각하며 검은 창고의 간이 의자에 앉아 단어의 소리를 똑똑히 기억했습니다. 배우들은 퇴장했고 나는 주머니에 꽂아둔 수첩을 꺼내 습관처럼 메모했으며 별달리 할 일이 없어 극장 앞 울타리에 걸터앉아 조금 전 지나온 비탈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누군가 옆에 앉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를 마주보려 고개를 돌렸을 때 낡은 울타리가 힘없이 부서지며 내려앉았습니다. 두 사람이 젖은 땅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흙에서는 낡은 창고의 냄새가 났습니다. 허리의 통증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내가 오는 길에 본 동상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극장을 빠져나온 관객들이 우리를 둘러서서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 휘파람을 불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인사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새로운 말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옛 친구들에게 모국어로 편지를 쓰는 것은 종종 나의 일입니다. 그곳의 극장은 어떠한가요?

연재



연재 작가님께.

이곳의 극장은 바다 위에 있습니다. 한 세기가 흘러 세상은 온통 불타고 있고, 육지를 빠져나온 인류는 배를 타고 바다를 유랑 아닌 피난하고 있습니다. 정박할 땅을 찾아, 인간은 바다를 떠돌아 다닙니다. 세상의 축소판이 되었기에, 크루즈 안에도 극장이 있습니다. 그 극장 안에서는 지난 연극의 시기에 유명했던 걸작들을 아주 조그맣고 소박하게 상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낡은 창고의 냄새가 납니다.
지난 시절 연극의 추억을 가진 늙은이들이 찾는 곳이지요. 혹여 크루즈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기도 하고요, 선내의 기이한 곳을 찾아다니는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합니다. 날씨가 느껴지지 않는 극장에선 현재의 위기를 모른 척 할 수 있으니까요, 오직 인간을 찬미하며 응원하던 지난 시절의 꿈에 빠져들 수 있으니까요.
미래의 세상은 기어코 망했을 것이고, 미래의 스펙타클은 응당 세계가 멸망 중인 풍경일 것이며, 미래의 인류는 반드시 떠돌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극장은 존재 자체만을 인정받아, 문화재의 자격으로 단 한 개만 노아의 방주에 탑승했을 것입니다. 멸종위기 종이었던 극장은, 차라리 소멸되기라도 할 것을, 차마 그러지도 못하고 배에 남아서 그 초라한 존재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하의 극장으로 돌아가는 모퉁이엔 몇몇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있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마로니에 나무의 그림이 걸려 있고, 엘리베이터 앞에는 다섯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는 로터리가 있습니다. 미래의 선조들은 그곳을 ‘대학로’라고 부르고 있어요. 연극을 모르는 극소수의 어린이들은 그곳이 왜 대학로인지 질문할 것입니다.

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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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재

김연재 본지 편집위원
작가, 단추학자, 이미지 수집가
<매립지>,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폴라 목> 등을 쓰고 전시 <불완전 운동>에서 <달과 종>을 연출했다. 1960년대 서울의 건축물과 오컬티즘에 관심이 있다.
인스타그램 @publish_ser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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